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호세 마누엘 모레노 (문단 편집) ====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국가대표]] ==== [[제2차 세계 대전]]의 영향으로 중단되기도 하고 [[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|아르헨티나]]가 출전을 거부하기도 하는 등 [[FIFA 월드컵|월드컵]]과 모레노는 영 인연이 없었지만 [[CONMEBOL 코파 아메리카|남아메리카 챔피언십]]에서는 그의 실력을 발휘했다. [[1941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칠레|1941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]]으로 모레노는 첫 국제 대회에 참가했고 그를 포함한 [[라 마키나]] 멤버들의 맹활약으로 아르헨티나는 전승 우승을 달성했다. 모레노는 4경기 3골을 득점하였는데, 이중 [[페루 축구 국가대표팀|페루]]를 상대로 2골을 넣어 2:1승리를 이끌었다. [[1942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우루과이|1942년 대회]]에서 모레노는 [[에콰도르 축구 국가대표팀|에콰도르]]를 상대로 5골을 넣어 12:0 대승을 이끌었다.[* 이는 [[엑토르 스카로네]], [[후안 마르베시]]와 함께 갖고 있는 코파 아메리카 역대 1경기 개인 최다 득점 기록이며 코파 아메리카 역대 최다 득점차가 나온 경기이기도 하다.] 모레노는 [[페루 축구 국가대표팀|페루]]를 상대로 2골을 더 넣어 총 7골로 득점왕을 차지하였지만 정작 아르헨티나는 준우승에 그쳤다. 이후 모레노가 [[리가 MX|멕시코]]로 떠난 동안에는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하다가 1947년에 국가대표에 복귀, [[1947 남아메리카 챔피언십 에콰도르|1947년 남아메리카 챔피언십]]에 출전한다. 이때 [[알프레도 디 스테파노]]가 대회기간동안 6골을 넣으며 맹활약했고, 모레노 역시 3골을 넣으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었다. 1947년 대회 MVP는 모레노의 차지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